역대 상사법학회장 "상법개정안, 법 근간 흔들어" 개정반대

한경협, 상법 개정 관련 긴급 좌담회 개최
상사법학회장 "상법개정, 글로벌기준 아냐"
경영권 위협·일부 펀드 투기 수단 변질
  • 등록 2025-02-19 오후 2:00:00

    수정 2025-02-19 오후 3:02:11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역대 한국상사법학회 회장들이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해 법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 충실 의무 확대, 집중투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 등을 골자로 한다. 상사법학회 회장들은 이 같은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19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공동으로 역대 한국 상사법학회 회장과 전문가를 초청해 상법 개정 관련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한국상사법학회는 지난 1957년 창립한 상사법(商事法) 분야 가장 오래된 학회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좌담회 참석자들이 19일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역대 상사법학회장들에게 묻는다 : 상법 개정, 이대로 좋은가’ 좌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석훈 국민연금 수탁위 위원장,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김창범 한경협 부회장,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특임교수. (사진=한경협)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개회사에서 “경제단체들은 그동안 상법 개정에 신중할 것을 수차례 호소했지만, 이런 경제계의 절실한 목소리가 외면받고 있다”며 “만약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사들은 불만을 품은 주주로부터 소송과 고발에 시달릴 뿐 아니라 주요 기업의 경영권이 국내외 투기자본에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일 소중한 자금이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한 지분 매입에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사, 소송·고발에 시달리게 될 것

토론회 좌장을 맡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일각에서 주주권 보호와 증시 활성화를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쉽게 말하지만, 이는 이사의 역할이나 이사회 기능을 전혀 모르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사들은 이사회에서 수없이 많은 결의를 하는데 통상적인 이사회 결의에 매번 모든 주주 이익을 보호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이다. 이사들은 소송 리스크 부담이 커지고, 경영 판단 순간마다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피소(被訴)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이 회사와 이사 간 수립된 법적 위임관계를 무너뜨리는 법리적 문제도 지적했다.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이사는 법적 위임계약을 회사와 맺고, 이 계약에 따라 회사 대리인으로서 충실의무를 부담한다. 이는 민법상 위임의 법리(민법 제680조)를 상법이 따른 것인데, 개정안은 이런 법리를 훼손시킨다고 꼬집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글로벌 표준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학회장들은 비판했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사가 개별주주와 직접 거래하거나 별도의 추가계약이 있거나 고의로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등 사기행위를 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주주 일반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부정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확립된 판례이자 입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과 판례에서 이사에게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의무를 부과하는데, 이 역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사들의 의무가 개별주주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고, 회사의 가치를 높여 궁극적으로 주주의 ‘단체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상법 개정한다고 주가 오르나…근거 없다”

한석훈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주가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성장 가능성, 영업이익, 매출 등의 펀더멘털과 이에 대한 예측에 연동해 결정된다”며 “명확한 근거도 없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기업 지배구조에서 찾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것의 문제점도 나왔다. 최준선 교수는 “멕시코·칠레를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없다. 일본도 과거 집중표제를 의무화했다가 주주 간 파벌싸움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1974년 이를 회사 자율에 맡겼다”고 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을 받은 한국기업이 2019년 8개사에서 2023년 77개사로 9.6배 급증했다. 이 상황에서 집중투표제 의무화나 이사 충실의무 확대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권에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인 한석훈 교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이 경영권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원래 경영권 분쟁은 지배구조가 취약한 중소·중견 회사에서 주로 발생했는데,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공격 수단이 더 늘어나면서 지배구조가 안정된 대규모 상장회사도 헤지펀드나 행동주의펀드의 공격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상법 개정이 소액주주 보호 효과는 미미한 데 반해 기업 경영권에는 위협이 된다는 지적이다. 또 국내외 헤지펀드만 단기차익을 올리게 해주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우려도 있다.

최준선 교수는 “상법 개정 이슈를 소수주주권 강화나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갈등으로 봐선 안 된다”며 “실상은 악성 펀드들의 단기 차익 거두기 수단으로 상법을 변질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수주주 보호라는 법 개정 취지를 살리기 어려운 만큼 국회는 상법 개정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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