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경기도 상급종합병원 근처에 개원 중인 모 의원은 최근 사직 전공의를 월 700만 원에 채용했다. 고용된 사직 전공의는 병원에 고용된 이른바 ‘페이닥터’다. 이 사직 전공의가 담당하는 업무는 대부분 단순 업무로, 근무 시간도 전공의 수련 당시보다 훨씬 짧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정갈등 기간 매출 신기록을 기록 중인 이 의원은 의사가 꼭 필요해서 고용했다기보단 사직 전공의의 생활고 해결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고용했다고 한다”면서 “인건비 비용을 늘리면 절세에도 도움이 된다고 소문이 퍼져 몇몇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너도나도 사직 전공의를 고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사직 전공의 5명 중 2명이 이미 의료기관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급 매출을 기록 중인 일부 병의원에 고용돼 단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일하지 않는 전공의 또한 안정된 생활 속에 복귀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 미복귀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그래픽=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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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 자료 중 ‘지역별·종별 의료인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의료기관에 취업한 일반의는 1만 684명으로 전년 대비 4643명이 늘었다.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는 일반의 신분으로 의료기관에 채용된 일반의는 대부분 사직 전공의다. 14일 기준 총 1만 2357명의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았는데, 이 중 37.5%가 이미 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말까지 의원급 의료기관에 채용된 일반의는 총 3097명이었으며 병원과 종합병원에서 각각 638명과 631명을 채용했다. 요양병원과 한방병원에서도 일반의 채용 인원이 늘었다. 반면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근무하는 보건지소(보건소 산하에 소속돼 지역의 보건업무·진료를 맡아 처리하는 곳)는 후임 일반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일반의 숫자는 406명으로 2023년 말 대비 229명 줄었다. 보건지소는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의료취약지역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데, 이들의 충원이 지연되면서 진료 공백이 커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사직 전공의를 고용하는 병의원은 의정갈등 기간 매출이 급증한 곳이다. 페이닥터로 변신한 사직 전공의들은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800만원까지 받으며 내시경 검사, 미용 시술, 일반 진료 등 단순 업무를 한다. 이러한 의료기관에 채용된 사직 전공의 중 다수는 개원 아이템을 현장에서 습득해 빨리 개인 의원을 차리겠다는 생각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에서 2년 정도 배운 전공의가 ‘응급상황 대처만 할 수 있으면 더는 배울 게 없다면서 사직했다”며 “이미 개원해서 돈 벌기로 마음을 굳힌 전공의가 다시 복귀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일부에서는 의사 인력이 부족해 고용하는 예도 종종 있다. 의료기사나 간호사 등 진료지원인력은 넘쳐나는데 정작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 일반의 채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 서울 한 대형병원 전공의실 앞 복도에 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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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에 채용된 사직 전공의를 제외하고 일하지 않은 전공의 대부분은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일반의 근무에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이러한 분위기는 차기 정권에서 전공의 복귀를 위해 전향적 조치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직 전공의는 “차기 정권이 수립되는 6월까지 버티면 뭔가 전환점이 마련되지 않을까 보는 시각”이라고 언급했다.
이렇듯 사직 전공의 대부분이 복귀가 절실하지 않아 전공의 미복귀 사태는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이들의 수련을 담당했던 의대 교수들은 사직 전공의 대부분이 향후 전문의 획득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복귀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의대 교수는 “일반의가 늘어나면서 일반의 입지가 점차 좁아질 수 있지만 현재는 일찍 개업해 수익이 되는 의료만 찾는다”면서 “필수의료과별 지원을 특화시켜 필수의료과 전문의 취득에 메리트를 느끼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