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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당선인의 인생에선 잘 알려진 두 번의 ‘기적’이 있었다. 선수 시절 20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최강’ 왕하오(중국)를 꺾고 금메달을 딴 장면이 그 첫 번째 기적이었다.
유 당선인은 선수인생을 통틀어 왕하오를 딱 두 번 이기고 18번 졌다.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 이전까지는 6전 전패였다. 그런데 그 2승 중 1승이 바로 올림픽 결승전이었다. 그때 유 당선인은 깨달았다. 달걀로 바위를 열심히 치다보면 언젠간 깨진다는 것을.
유 당선인의 금메달은 사실 운도 따랐다. 한때 세계 최강자였지만 아테네 대회 당시엔 한물간 선수 취급을 받았던 얀-오베 발트너(스웨덴)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마린(중국)과 티모 볼(독일)을 잇따라 꺾었다. 당시 유 당선인은 마린에게 7전 전패, 티모 볼에게 3전 전패로 절대적 열세였다. 반면 발트너에게는 강했고, 여러번 이긴 적이 있었다. 결국 4강에서 발트너를 이기고 결승에 안착할 수 있었다.
유 당선인의 두 번째 기적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에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 선거였다.
선거 초반만 해도 인지도가 너무 떨어져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유 당선인은 매일 똑같은 하늘색 셔츠와 흰색 바지를 입고 선수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선수촌, 경기장 등 선수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오죽하면 ‘선수촌 버스 정류장은 유승민의 홈그라운드’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IOC 선수위원 선거 만큼이나 ‘대이변’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냥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이라는 것이 옳다.
유 당선인의 선거 전략은 철저한 ‘밑바닥 훑기’였다. 다른 후보들이 선거 기간 동안 시도체육회장들을 만나는데 주력한 반면, 유 당선인은 실무자와 현장 지도자, 선수들을 접촉했다. 그들의 고충과 애환을 직접 들어주고 이를 공약에 반영했다. 유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가장 강조한 것도 ‘일선 지도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었다.
특히 젊은 체육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결정적인 한방이 있었다. 대한체육회 가맹 68개 전 종목을 체험하고 짧은 영상(쇼츠)을 제작해 온라인에 공유한 것. 40대 초반의 젊은 엘리트 선수 출신인 유 당선인의 강점을 잘 보여준 선거운동이었다.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의 선전도 유 당선인에게는 행운이었다. 강 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216표를 받아 3위를 차지했다. 체육계에선 서울시체육회를 이끌며 만만치 않은 조직력을 갖춘 강 회장이 이 회장의 표를 제법 가져온 것으로 보고 있다. 유 당선인 입장에선 강 회장이 아테네 올림픽 당시 발트너와 같은 존재였다. 35.4%라는 낮은 지지율에도 당선될 수 있었던 힘이 됐다.
유 당선인은 1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고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어떤 리더가 될지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 이제까지 경험하고 보여드린 과정보다 두 세 배의 진정성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체육 현장을 모른 채 공약을 낼 수 없다는 생각에 수많은 체육인과 소통했다”고 밝힌 유 당선인은 선거와 스포츠를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예상 이상의 결과, 이변이 나올 수 있는 게 비슷하다”며 “중요한 것은 종목에 대한 관심과 열정,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선수 시절 대회를 앞두고 약간의 후회가 남는데 이번 선거에선 모든 걸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은 유 당선인은 ‘기적의 사나이’라는 별명답게 “앞으로 대한민국 체육을 바꿀 수 있는 기적을 향해 뛰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